그는 비록 세계 챔피언십 그랑프리에서 단 한 차례도 우승하지 못했지만, 최고의 페라리 드라이버이자 최고의 포뮬러 원 드라이버로 알려져 있다.
뉴질랜드 목양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67년에서 69년까지 페라리를 몰았고, 그랑프리 결승전에서 수차례 3위 안에 들었다. 스쿠데리아 소속으로 첫 출전한 모나코 레이스에서 단 23세의 나이로 3위를 기록했으며 1967년에는 4번이나 3위를 차지했다.
1968년 아몬은 정말 세계 타이틀을 땄어야 했다. 아몬과 페라리의 조합은 해당 시즌 가장 빨랐다. 그는 3회에 걸쳐 폴포지션에, 그리고 12개 레이스 중 8번은 그리드의 맨 앞줄에 배정되었고, 그랑프리를 여러 차례 리드했다. 하지만, 반복적인 사소한 기계 고장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뉴질랜드 목양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67 년에서 1969 년까지 페라리를 몰았다.
스페인 그랑프리에서는 선두그룹에서 경기를 이끌었지만, 연료 펌프 퓨즈가 끊어져 승리를 놓쳤다. 벨기에 스파(Spa)에서는 4초라는 큰 차이로 예선을 통과했지만, 작은 돌이 페라리의 오일 라디에이터를 파손시키며 선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영국 그랑프리에서는 막판까지 치열하게 접전을 펼치다 아깝게 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캐나다 그랑프리에서는 레이스 내내 선두그룹을 지키며 승리를 굳히는 듯했으나, 기어박스 고장으로 안타깝게 1위를 놓쳤다.
1969년 월드 챔피언십 시즌의 두 번째 레이스인 스페인 그랑프리에서는 엔진 고장이 발생하기 40초 전까지 만해도 1위를 유지했다. 아몬은 그렇게 아쉽고 실망스러운 1969년을 마지막으로 페라리와 작별했다. 그 후, 더 많은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코스워스 V8 엔진으로 바람을 일으키던 더 작은 규모의 영국팀으로 이적했다. 하지만, 이는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1970년 페라리는 새로운 12기통 수평 엔진을 탑재한 F1용 312B를 도입하며 눈부신 기록을 세웠다. 새로운 팀 리더였던 재키 익스는 3번의 레이스에서 우승을 거머쥐었으며, 그 해 치러진 세계 타이틀에서도 1위와 근소한 차이로 2위를 차지했다.
아몬은 1968년 영국 그랑프리에서 막판까지 치열하게 접전을 펼치다 아깝게 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아몬이 세계 챔피언십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지만, 다른 모터 스포츠에서는 성공을 거뒀다. 특히, 스포츠카 경주에서는 로렌조 반디니와 한 팀을 이뤄 330 P4를 통해 1967년 데이토나 24시간 레이스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스쿠데리아의 가장 인상적인 기록 중 하나로, 페라리가 1, 2, 3위를 모두 차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아몬은 그해 몬자 1,000km 스포츠카 경주에서도 우승했으며, 페라리가 1967년 세계 스포츠카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는 데에도 일조했다.
아몬은 1969년 태즈먼 시리즈에서도 페라리로 우승을 했는데, 태즈먼 시리즈는 이듬해인 1970년부터 국제 챔피언십 행사에서 제외되었다. F1의 1~2월 겨울 오프시즌 동안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개최되었던 태즈먼 시리즈는 F1보다 한 단계 낮은 성능의 자동차 또는 그와 유사한 차량이 참여하는 레이스였다. 아몬은 실질적으로 포뮬러 2 자동차에 비해 더 강력한 성능을 가진 디노 246(V6 엔진 장착)을 타고 뉴질랜드와 호주 그랑프리를 포함한 7개 레이스에서 4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그의 경쟁자들 중에는 당시 세계 챔피언이었던 그래엄 힐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몬은 태스먼 시리즈에서도 그의 페라리 디노 246로 우승했다.
아몬은 1960년대 초 잉글랜드 F1 구단주인 레그 파넬에 의해 발탁되어 19세의 나이에 고향인 뉴질랜드를 떠났다. 파넬은 오래된 마세라티 250F로 경주하는 아몬의 모습을 보고 250F를 잘 다루었던 드라이버, 판지오만 생각났었다고 했다. 1970년대 중반까지 아몬은 뉴질랜드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언급하곤 했다. 1976년 33세였던 아몬은 니키 라우다 등의 피해자를 낳은 끔찍한 뉘르부르크링 추락 사고 이후 F1 은퇴를 선언했다. 그후 1977년, 가족이 운영하던 양목장을 물려받기 위해 아내 티시와 함께 고향인 뉴질랜드로 돌아갔다. 73세가 되던 2016년에 그는 암으로 사망했다.
은퇴 후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아몬에게 악명높았던 그의 불운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그는 ‘아니다’ 라고 답했다. 자신은 오히려 운이 좋았던 이들 중 하나였으며 동 시대에 활동했던 많은 친구와 팀 동료들은 죽었지만, ‘나만이 이렇게 살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