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넬로의 새로운 e-빌딩은 미래의 스포츠카가 생산될 곳이다. 2024년 6월, 이탈리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문을 연 이곳은 진화, 환경 그리고 에너지라는 이름으로 페라리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을 기록하고 있다.
방문 당일은 페라리의 e-빌딩 완공이 임박해 있는 시기였다. 새로운 공간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대부분 비어 있었다. 그러나 곧 이곳은 수백 명의 직원들이 각자의 업무를 처리하고, 윙윙거리는 소리와 진동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이 장소는 엄청난 기대 속에 있는 페라리 순수 전기차가 생산될 곳이다.
e-빌딩은 현재 '램프-업(ramp-up)'단계에 있다. 주요 신규 시설이 완전한 기능을 발휘하기 전에 겪는, 약간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아내는 가동률 50% 수준의 초기 단계라 볼 수 있다. 수 년간 계획한 복잡한 시스템들은 '디버깅'되고, 인프라 지원 코드가 수정되고 있으며, 신규 휴머노이드 로봇들은 새로운 기능을 수행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 건물은 엄청난 잠재력을 내포하고 있으며, 페라리 77년 역사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페라리가 만드는 순수 전기 모델의 출시가 눈 앞에 있다는 사실 그 이상이다.
페라리 CEO 베네데토 비냐(Benedetto Vigna)는, "이 건물은 ‘유연성(flexibility)을 의미하는 ‘F’가 핵심 문자이긴 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e-빌딩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e-빌딩은 단순히 '전기(electric)'만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곳은 전체 연구 개발 및 제조 프로세스가 최적화될 수 있도록 퍼즐의 모든 조각을 맞추는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서 설명했다. "우리는 멀티 에너지 전략을 추구하고 있고, 페라리가 어디에 있어야 할 지 잘 알고 있습니다. 페라리는 전통적인 자동차 기업에 비해 빠르지만, 테크놀로지 기업보다는 느립니다. 사실 페라리는 이 둘을 독특하게 조합하고 있습니다. 하이테크는 이성을, 럭셔리는 감성과 헤리티지, 스토리텔링을 포함합니다. 페라리는 이 두 가지 측면을 모두 아우르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자동차 회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반적인 공장도 아니다. 이 새로운 건물에 대해 그저 '제로 원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페라리는 1947년부터 자동차를 만들어 온 기업으로, 자동차 제작에 투입되는 높은 수준의 장인 정신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가져왔으며, 오랜 시간 첨단 기술의 선구자로서 역할을 다해왔다. 따라서 e-빌딩은 신기술을 도입하고,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반을 마련하는 곳임과 동시에 수십 년간 쌓아온 전문 지식의 결실이라고도 볼 수 있다. 건물의 이름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페라리 최고 기술 및 인프라 책임자인 다비데 아바테(Davide Abate)는, "그런 이름을 갖게 된 근거로는 세 개의 'E'가 있습니다" 라고 설명한다. "첫 번째는 페라리에게 있어서 파워트레인 그리고 순수 전기차 시대의 도래라는 측면에서, '진화(evolution)'를 의미합니다. 두 번째는 '환경(environment)'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오래된 산업용 땅을 개발해 부지를 확장했으며, 약 5만 m2 를 완전히 재개발했습니다. 마지막 의미는 에너지(energy)'입니다. 지속 가능성은 단순히 에너지 사용에 관한 것이 아닌, 그 무엇보다도 우리 직원과 회사에서 직원을 대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기도 합니다.”
신규 공장은 여러 기능을 수행하게 될 예정이다. 내년이면 첫번째 전기 페라리가 탄생한다. 차량의 콘셉트와 형태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하지만 차량 자체는 물론 고전압 배터리, 전기 모터과 액슬도 이 곳에서 생산될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하지만 비냐가 강조한 것처럼, 페라리 전기차는 다른 페라리 모델과 다른 페라리 액티비티를 아우르는 전체의 일부분일 뿐이다. 페라리는 2009년부터 전기 자동차 기술을 개발해왔으며, 296 GTB를 구동하는 하이브리드 V6는 12칠린드리 모델 및 푸로산게의 핵심인 내연기관과 공존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활용하면 시너지가 확대된다.
교육 센터를 위한 공간과 직원 전용 휴게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향후 추가적인 개발을 위해 전체 공간의 30%가 여유 공간으로 남아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페라리 최고 연구개발 책임자인 에르네스토 라살란드라(Ernesto Lasalandra)는 이렇게 설명한다. "배터리와 모터의 경우, 설계 및 생산을 최적화하기 위해 다비데(Davide)가 이끄는 기술 및 인프라 팀과 공동으로 작업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그 중간에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배터리를 설계했지만, 매주 회의를 통해 e-빌딩에서 할 수 있는 다른 작업을 설정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2019년에 처음 논의되었으며, 기본 매개변수는 2021년 11월 최종 승인을 앞두고 합의되었다. 건물 디자인은 지속 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있는 볼로냐 소재의 마리오 쿠치넬라 건축사 사무소(Mario Cucinella Architects)가 담당했다. e-빌딩은 에너지 효율에 큰 역점을 두고, 제로 에너지 빌딩(NZEB)에 가까운 성능을 달성하도록 설계되었다. 빗물을 저장하고 재순환하여 건물의 여러 녹지대에 물을 공급하는 등 다양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열과 단열설계를 세심하게 조정하여 여름철에는 태양 복사열을 흡수하고 특수 설계된 채광창을 통해 최대한 많은 자연광이 건물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설계했다. 오팔색과 투명 유리 패널이 건물 외관을 감싸며, 야간엔 눈길을 사로잡는 오팔 파사드 '랜턴' 효과 덕분에 건물 구조에 활기가 생긴다.
건물의 에너지 시스템은 화석 연료에 의존하지 않으며, 에어컨은 재생 에너지로 작동하는 완전 전기식 히트 펌프를 사용한다. 지붕에는 3,000개 이상의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 있으며, 최대 출력은 1.3MW이다. 이는 일반적인 생산 시설이라기보다는 에코 시스템(생태계)에 가깝고, 미학적으로 그리고 스펙에 있어서도 상당히 뛰어난 건물이라 할 수 있다.
베네데토 비냐는 "그저 커다란 상자를 지었다면 훨씬 비용을 낮출 수 있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익명의 테크 빌딩을 방문해 왔다. "하지만 방문객과 직원을 위한 무언가를 건설할 기회였습니다. 아름다움과 기능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자동차를 만들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직면한 도전 과제입니다. 생산 공장은 일반적으로 이 곳과 같은 유연성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페라리 본사를 오랫동안 방문해 왔던 이들이라면 4층에 걸쳐 총 42,500 m2 에 이르는 새 건물 부지를 어떻게 확보했는 지 궁금해할 것이다. 페라리는 에밀리아의 마라넬로를 전 세계에 꾸준히 홍보하고 적극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페라리는 부지 확장을 위해 39채의 건물을 매입하고 황량한 산업 부지를 매립했다. 부지 주변의 도로망을 개선하고 약 1,400개의 주차 공간을 새로 만들었으며 1.5km의 자전거 도로도 건설했다. 총 110,000 m2 의 부지가 재개발되어 예전에 큰 관심을 끌지 못했던 지역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다시 빌딩 안으로 들어가면, 로봇 하나가 우아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 로봇들은 곧 생산에 있어서의 제약사항들을 극복하고 필요한 곳에서 빠른 리툴링(re-tooling, 장비 및 기계 교체)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다. 작업장은 재구성이 가능하고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되었으며, 여러 각도로 조절할 수 있는 암훅(arm hooks)을 사용한다. 유연성의 증거는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페라리의 지금, 내일, 내년 혹은 향후 20년 동안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요구 사항을 위해 준비된 것들이다.
왼쪽부터: e-빌딩 생산 라인의 또 다른 모습 - 풍부한 창문은 시설에 엄청난 양의 빛을 가져온다. 사무실 창문을 통해 공장 바닥이 보인다.
페라리 최고 디지털 & 데이터 책임자인 실비아 가브리엘리(Silvia Gabrielli)가 이에 대한 많은 책임을 지고 있다. “다비데와 함께 일하면서 우리는 백지 상태에서 이러한 실험실이 탄생하는 과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유연한 공장 환경에서 디지털 기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지 연구하는 실험실 말이죠”라고 가브리엘리는 말했다. "우리는 이런 산업 시설을 지원하는 모든 최신 기술을 연구했으며, 향후 20년 동안 가장 유망할 것으로 생각되는 기술들을 파악했습니다.”
"그래서 새 건물에는 초광대역(UWB) 기술이 적용돼 있습니다. 이 기술은 건물 인프라에 통합되어야 합니다. 이는 네트워크와 배선에서 시작됩니다. AI조차도 매우 물리적이고 기본적인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곳에 필요한 배선들을 설치했으며, 적절한 시기와 장소에 초광대역을 도입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왜 초광대역 기술일까? 강한 신호 침투력과 높은 보안성, 정밀한 위치 정확도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가브리엘리는, "매우 중요한 부품이 어디에 있는지 식별할 수 있는 용례가 있습니다"라고 설명한다. "효율성뿐 아니라 안전성 측면에서도 프로세스를 최적화합니다. 일부 영역에서 디지털화의 수준을 높이면 직원들은 업무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페라리의 최우선순위는 언제나 사람이다. 하지만 한 세대에 한 번 있을까 한 변화의 한가운데 있는 기업의 장기적 안녕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의 경영 모델은 전략적 장인 정신과 첨단 기술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라고 페라리의 최고 제조 책임자인 안드레아 안티치(Andrea Antichi)는 설명한다. "그 비결은 엔지니어와 디자이너가 함께 가능한 한 최고의 작품을 자유롭게 꿈꾸고, 우리는 그 꿈을 '살아있는 기계'로 바꿀 수 있는 연금술을 찾는 것입니다. 이것은 페라리 직원들이 가진 독자적 틈새 기술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페라리는 번영을 이루고 성공할 것이다. 그러나 큰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비전과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필요하다. 새로운 e-빌딩은 강철과 콘크리트로 만든 선언문과 다름없다.
베네데토 비냐는 이렇게 요약하며 결론지었다. "모든 세대가 직면한 과제는 똑같습니다. 저는 여러가지 면에서 자부심을 느낍니다. 저희는 투자자와 많은 사람들 앞에서 했던 일정과 재정적 약속을 지켰습니다. 계획을 충실히 이행했습니다. 이는 부분적으로 저희의 공급업체 덕분이기도 합니다. 코로나 기간 동안 약속을 이행하고 관리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메시지는, 이 공장이 고객을 만족시키는 동시에 공장 근무자들을 존중할 수 있는 최첨단 시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구를 위한 시설입니다. 저희는 말한 것을 실천합니다. e-빌딩은 공동체를 위한 메시지입니다. 행동 촉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귀를 열고, 눈을 뜨고, 네 바퀴로 서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