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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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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몬자

페라리가 이번 주말부터 이탈리아 그랑프리 출전을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이에 맞춰, 스쿠데리아가 수많은 우승을 차지했던 몬자 서킷에 대해 살펴본다.

글: 개빈 그린(Gavin Green) / 영상: 올리버 매킨타이어(Oliver McIntyre)

페라리의 고향은 마라넬로다. 하지만 두번째 고향은 분명 몬자다. 몬자는 이탈리아 그랑프리가 열리는 곳이자 페라리의 가장 유명한 우승 기록들이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마라넬로에서 북서쪽으로 200km 떨어져 있으며 밀라노에서 멀지 않은 녹음이 우거진 공원에 위치해 있다. 일명 ‘스피드의 신전(Temple of Speed)’으로 알려져 있을 만큼 역사상 가장 빠른 트랙 중 한 곳이다. 코너 구간이 거의 없지만 레스모(Lesmo), 파라볼리카(Parabolica), 커바 그란데(Curva Grande)는 모터 레이싱에서 가장 유명하고 까다로운 구간으로 알려져 있다. 몬자는 그랑프리 역사상 가장 접전이었던 피니시를 비롯, 가장 흥미진진한 레이싱이 펼쳐지는 곳이며 단연 최고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다. 그리고 이는 붉은색 자동차를 응원하는 티포시들의 열광적인 열정 덕분이기도 하다.




몬자에서 페라리 레이싱 역사 75년을 만나보세요…




몬자는 현존하는 F1 서킷 가운데 가장 유서 깊은 곳이다. 지금은 사라진 영국의 브룩랜드(Brooklands)와 인디애나폴리스 스피드웨이(Indianapolis speedway; 인디애나폴리스 500은 여전히 개최되고 있다)에 이어 세 번째로 만들어진 레이싱 전용 트랙이다. 1922년 지어진 이 곳에서 제2회 이탈리아 그랑프리가 개최됐다(1921년 경기는 브레시아 인근의 공도 서킷에서 진행됐다).

몬자 서킷은 70년 전 새로운 가속 타원 구간을 포함해 완전히 개조됐다. 해당 구간은 1961년까지 간헐적으로 이용되다 안전하지 않다는 판단으로 폐쇄됐다. 보조적인 타원 구간이 없는 고전적인 권총 모양의 서킷은 속도를 줄이고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시케인(chicanes, S 형태의 굴곡 구간) 설치를 비롯한 다양한 수정 과정을 거치며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속 264.4km에 이르는 F1 역사상 가장 빠른 랩이 2020년 몬자에서 개최된 퀄리파잉에서 나오기도 했다.




위: 1949년 몬자에서 시작된 이탈리아 그랑프리. 알베르토 아스카리(Alberto Ascari)가 페라리의 우승을 차지했으며, 이는 이 브랜드의 첫 그랑프리 우승이었다.




페라리는 몬자 서킷에서 어떠한 자동차 제조사보다도 많은, 20번의 이탈리아 그랑프리 우승을 차지했다. 첫 번째 우승은 F1 월드 챔피언십이 시작되기 1년 전인 1949년에 이뤄졌다. 당시 알베르토 아스카리(Alberto Ascari)가 페라리의 1-2 피니시를 이끌었다. 스쿠데리아 페라리가 창립된 지 불과 2년밖에 되지 않은 시기였다. 이는 앞으로 그랑프리에서 만들어 나갈 괄목할만한 성공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1951년 아스카리는 또 다시 페라리의 1-2피니시를 이끌면서 우승을 차지했다 (스쿠데리아는 같은 해 4위와 5위도 차지했다). 아스카리는 1952년 다시 한번 우승했는데, 그 해에 그는 자신의 첫 월드 타이틀이자 페라리의 첫 월드 타이틀을 획득했다.

1960년에는 보조적인 고속 타원 구간이 사용됐다. 필 힐(Phil Hill)은 그의 첫 이탈리아 그랑프리 우승을 페라리에게 안겨주었고, 그는 F1 우승을 차지한 첫 번째 미국인 드라이버로 기록됐다. 그는 이후에도 위업을 반복해 달성했고 1961년에는 미국인 드라이버로는 최초로 월드 챔피언에 등극하며 월드 타이틀을 획득하게 된다.




왼쪽부터: 1951년 이탈리아 GP에서 우승한 아스카리, 1961년 몬자에서 우승을 향해 나아가는 필 힐(Phil Hill), 1964년 이탈리아 GP에서의 존 서티스(John Surtees), 1988년 이탈리아 서킷에서 우승을 앞둔 게르하르트 베르거(Gerhard Berger)




그럼에도 페라리 피트에서는 축하 분위기를 거의 느낄 수 없었다. 힐의 팀 동료였던 볼프강 폰 트립스(Wolfgang von Trips)가 차량 충돌로 뱅킹을 넘어 전복되며 사망했기 때문이다. 이 사고로 울타리에 깔린 15명의 관중도 함께 사망했다. 이는 몬자 서킷의 어두운 면을 부각시켰던 사건이었다. 통계적으로도 몬자는 빠른 속도 때문에 가장 위험한 레이싱 서킷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전직 모터사이클 레이서였던 존 서티스(John Surtees)는 1964년에 우승하며 그해 월드 타이틀의 포문을 열었다. 그는 두 바퀴(모터사이클)와 네 바퀴 레이싱 챔피언십에서 모두 우승한 유일한 사람이다. 1967년 이탈리아 영웅 루도비코 스카르피오티(Ludovico Scarfiotti)가 페라리 소속으로 우승하며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 우승한 마지막 이탈리아인이 됐다. 그는 피아트 창립자 중 한 명의 손자로서, 첫 번째이자 유일한 토리노 출신의 F1 세계 챔피언십 우승자였다.




위: 미하엘 슈마허(Michael Schumacher)가 1996년 이탈리아 GP에서 우승했다.




1971년 BRM을 탄 영국인 피터 게틴(Peter Gethin)은 0.01초 차이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F1 역사상 가장 근소한 차이의 승리다. 상위 5명은 0.61초 차이로 밀집해 있었다. 평균 경주 속도는 시속 242.6km로, 이는 현재까지 기록된 F1 레이스 중 가장 빠른 수치다(1972년에는 속도를 줄이기 위한 두 개의 시케인이 추가됐다).

이는 미하엘 슈마허(Michael Schumacher)가 2003년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 시속 247.6km로 페라리의 우승을 차지할 때까지 가장 빠른 기록이었다. 그해 페라리가 몬자에서 거둔 승리는 여전히 가장 빠른 F1 레이스 우승 기록으로 남아 있다.

1971년과 2003년 사이, 페라리가 거뒀던 위대한 승리 중 하나는 클레이 레가조니(Clay Regazzoni)가 우승을 차지하고 니키 라우다가 3위에 올랐던 1975년 몬자 그랑프리다. 니키 라우다는 같은 해 말에 페라리 소속으로 출전해 처음으로 F1 챔피언십을 차지했다(2025년은 그 영광스러운 승리의 50주년이 되는 해다). 몬자에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승리는 1979년 조디 셰크터의 우승으로, 이로 인해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드라이버가 월드 타이틀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후 1988년 게르하르트 베르거(Gerhard Berger)의 우승과 미켈레 알보레토(Michele Alboreto)의 2위 기록은 창립자 엔초 페라리 사망 이후 몇 주 만에 이뤄진 감동적인 1-2 승리였다. 미하엘 슈마허의 첫 이탈리아 그랑프리 승리(다섯 번의 우승 중 첫 번째)는 1996년에 스쿠데리아 페라리 팀과 함께 이뤄냈다.




위: 2019년 몬자에서 우승한 후의 샤를 르클레르(Charles Leclerc), 페라리에서 첫 시즌을 보낸 모습




가장 최근에 이뤄낸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의 승리는 2019년, 샤를 르클레르가 스쿠데리아 합류한 후 첫 시즌에서 기록한 우승이다. 오는 9월 개최되는 그랑프리 레이싱에서 가장 유서 깊은 서킷에 모일 티포시는 페라리의 21번째 이탈리아 그랑프리 우승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표지 이미지: 2000년 이탈리아 GP에서 미하엘 슈마허(Michael Schumacher)가 우승한 후 몬자 서킷에 모인 페라리 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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