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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Sep 2023Magazine, Passion

스케치에서 시작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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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에서 시작되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전투기 조종사, 슬픔에 잠긴 백작 부인, 천재 조각가. 이 셋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기업 심볼 중 하나인 페라리 프랜싱 호스(Ferrari Prancing Horse)를 탄생시킨 핵심 인물들이다.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이탈리아 북부의 한 로드 레이스에서 시작된다.

글: 케빈 M. 버클리(Kevin M. Buckley)

1923년 이탈리아 북부에서 열린 사비오 서킷(Circuito del Savio) 그랑프리. 25세의 젊은 레이싱 드라이버가 고글을 벗어 던지고 이제껏 달려온 44km 도로의 먼지를 털어냈던 그 순간, 그의 머리 속에는 오직 트로피를 받을 생각 뿐이었다.

이름이 아직 덜 알려진 레이서, 엔초 페라리가 이룬 첫번째 승리였다.

하지만 사비오 그랑프리는 다른 이유로도 그의 삶과 경력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엔리코 바라카 백작을 처음 만난 곳이 바로 이 행사였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만남 직후 지속적인 우정을 쌓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년 후 백작의 아내인 파올리나 비앙콜리 백작 부인(Contessa Paolina Biancoli)이 직접 엔초에게 사랑하는 아들 프란체스코의 전투기에 새겨졌던 유명한 심볼을 사용하라고 권유했다. 프란체스코는 1차 세계대전 당시 1918년 전투에서 전사한 존경받은 공군 조종사였다.

여전히 슬픔에 잠겨 있던 백작 부인은 분명 이 심볼이 엔초에서 행운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확신시켰다. 그 드라마틱한 심볼은 바로 앞다리를 치켜들고 선 검은 종마였다.




메탈 배지 세 개를 나란히 배열해보면 그동안의 과정에서 고려했던 다양한 그래픽 기능과 상징성이 보인다.(모든 이미지 제공: O.M.E.A. 아카이브)




이 심볼의 한 버전은 1932년 스파 프랑코샹에서 스쿠데리아 페라리 팀 소속으로 경주에 나선 알파 로메오 차량에 등장한 적이 있다. 참고로 이 심볼은 지나 크로아리(Gina Croari)가 디자인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엔초 페라리가 사비오 그랑프리에서 심볼을 접한 지 약 24년이 지난 1947년이 되어서야, 특유의 도약하는 말이 새겨진 페라리 차가 탄생하게 된다. 바로 이 차가 마라넬로 공장에서 처음으로 생산된, 전설적인 125 S다. 이 차는 그해 5월 피아첸차(Piacenza)에서 처음으로 레이스에 출전했다.

이 때로부터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1945년에 엔초가 공장을 설립했을 때 그는 회사를 상징하는 독특한 엠블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회사 내에서 구상했던 몇 가지 초기 디자인이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완벽주의자였던 엔초는 이탈리아의 위대한 20세기 조각가 중 하나인 엘리지오 제로사(Eligio Gerosa)를 만나기 위해 밀라노를 찾았다.

엔초가 알파 로메오(Alfa Romeo)로 레이싱을 할 때, 제로사의 회사는 에나멜로 된 꼬인 뱀 모양의 배지를 공급하면서 둘은 이미 만났던 적이 있었다. 게다가 둘에겐 바라카를 존경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특히 제로사는 공군 조종사를 기리기 위한 바라카 협회(Baracca Association)를 설립했으며, 협회에 쓸 바라카의 검은 말 심볼을 발전시켜 말 꼬리가 위로 향한 모양으로 만들었다.




전설적인 125 S에 장착된 최초 페라리 자동차의 최종 버전




1949년 제로사의 회사는 밀라노의 칸디아니(Candiani) 가문이 소유한 O.M.E.A.(Officine Meccaniche E Artistiche) 에 인수되었고, 제로사는 여전히 현업에서 활동했다. 오늘날 O.M.E.A. 회사 아카이브에는 1978년 사망한 제로사와 페라리 사이에 어떤 긴밀한 협업이 있었는지, 그리고 페라리의 엠블럼이 어떻게 진화했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증거가 담겨 있다. 이제 80대가 된 에밀리오 칸디아니(Emilio Candiani) 회장은 30년의 협업 기간 동안 엔초가 작업장을 방문했던 일 그리고 마라넬로의 '일 카발리노(Il Cavallino)' 레스토랑에서 엔초와 함께 했던 수많은 점심식사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아카이브의 중요한 문서 중 하나는, 손으로 그린 섬세한 디테일이 마치 다빈치 같은 면모를 드러내는 제로사의 스케치다.

칸디아니 공방의 오래된 장인들에 따르면, 엔초 페라리가 직접 손으로 쓴 메모를 도면에 추가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제로사의 디자인 오른쪽 하단에는 아직도 '말의 방향을 반대로 할 것(Invertire il cavallo)’이라는 엔초의 지시 사항이 적혀 있다. 이 문구는 페라리 심볼이 왼쪽을 향하게 된 바로 그 순간을 보여준다. 이후 이 심볼은 전 세계 도로와 레이싱 트랙에서 당당히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에밀리오의 아들인 루이지 칸디아니(Luigi Candiani) 부회장은, "디자인이 진화하면서 말이 점점 더 슬림하고 우아해졌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마라넬로가 위치해 있는 에밀리아-로마냐(Emilia-Romagna) 주의 맛있는 음식을 언급하며 웃었다. “훨씬 뚱뚱했던 초기의 말, 로마뇰로(Romagnolo)와 매우 달라진 것이죠.”




배지가 처음으로 만들어진 오리지널 금속 몰드




초창기 배지의 배경은 모데나 시의 공식 컬러와 연관성을 갖기 위해 의도적으로 밝은 노란색을 채택했다. 에밀리오 칸디아니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엔초의 아이디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라고 회상했다. 125 S 배지의 초기 제안서를 보면, 배지 상단에 이탈리아 국기 색상의 줄 세 개가 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하지만 엔초가, '휜 선은 별로네요. 부가티 그릴을 연상시킵니다. 직선으로 바꿔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말의 얼굴도 점차 세련된 모습으로 변했다. "어느 순간, 엔초는 말발굽이 글자 위에 있는 게 아니라 공중에 떠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제로사에게, '말을 날게 해달라(me la facia che voli)’라고 요청했죠.” 에밀리오는 웃으며 설명했다. 현재 밀라노 비아 알바니(Via Albani)의 유서 깊은 공방 외부에는 칸디아니의 재능있는 장인들을 기념하는 명판이 벽에 걸려 있다. 에밀리오 칸디아니는 공로를 인정받아 '카발리에르(Cavaliere, 이탈리아에서 산업인에게 수여하는 명예 기사)’ 작위를 받았다.

카발리에르 칸디아니의 목소리엔 감정이 담겨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심볼을 탄생시킨 데 기여한 것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이탈리아의 이야기입니다. 엔초는 늘 프로페셔널했고,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이었죠. 엔초가 자신의 프로젝트를 얼마나 굳건히 믿었는지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감동이었죠. 엔초는 줄곧 앞을 내다보는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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