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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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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데뷔

후안 마누엘 판지오부터 페르난도 알론소까지, 레이스 데뷔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페라리 드라이버들을 조명해 본다.

글: 제이슨 발로우(Jason Barlow)

페라리 팀 드라이버로서 레이스에 참여한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페라리는 지난 75년간 모터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챔피언들과 함께해 왔다. 그 중에서도 일부 드라이버들은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머신으로 출전한 첫 레이스에서 우승하는 엄청난 기록을 달성했다. 최고 중의 최고라 할 수 있는 그들이 써내려 간 기록 속에는 때때로 대단한 이야기가 숨어있다.

나이젤 만셀(Nigel Mansell)은 1989년 월드챔피언십 개막전에서 우승했다. 페라리가 혁신적인 반자동 변속기 (semi-automatic transmission)를 최초로 선보인 경기에서 거둔 승리였기에 더욱 특별했다. 만셀은 예선 경기에서 6위에 그쳤는데, 새로운 변속기에 대한 신뢰가 없었던 만큼 조기 귀국할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는 경기 도중 피트 스톱에서 스티어링 휠을 교체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인상적인 주행을 펼쳤고 브라질 그랑프리에서 극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페라리 데뷔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전설적인 F1 드라이버들




그러나 페라리 팀으로 출전한 데뷔전에서 우승을 기록한 최초의 드라이버는 나이젤 만셀이 아니다. 후안 마누엘 판지오(Juan Manuel Fangio)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모터스포츠 역사에서 수많은 최초의 기록을 보유한 전설적인 드라이버로, 1956 시즌 페라리와 계약을 체결한 뒤 개막전인 아르헨티나 그랑프리에서 승리했다. 특히 해당 경기에서 페라리 팀 데뷔전을 함께 치른 루이지 무쏘(Luigi Musso)와 함께 우승을 차지했다. 무쏘는 첫 29번째 랩까지 경기의 선두를 유지했지만 판지오의 차량에 연료 펌프 문제가 생기면서 그에게 차를 넘겼다. 당시 레이스 관행에 따라 팀의 리더였던 판지오가 무쏘의 차를 넘겨받은 것이다. 이후 판지오는 스털링 모스(Stirling Moss)의 마세라티와 치열한 접전을 벌였으나 경기 도중 모스의 차량이 연료 누출 문제를 겪으며 페이스가 떨어지게 된다. 판지오는 레이스 중 한차례 스핀을 하는 아찔한 순간도 겪었지만 결국 우승을 차지했다. 페라리 소속 드라이버로서 출전한 첫 경기에서 승리를 거머쥔 것이다.




판지오, 바게티, 안드레티, 맨셀, 라이코넨, 그리고 알론소는 모두 페라리 데뷔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한편 잔카를로 바게티(Giancarlo Baghetti)가 1961년 프랑스 그랑프리에서 거둔 승리는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극적인 순간을 연출했다. 바게티는 당시 이탈리아 자동차 연맹(FISA – 재능 있는 젊은 드라이버에게 출전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페라리의 네번째 레이스카 운영 비용을 지원했다)의 후원을 받았고 페라리 레이스카로 시라쿠사(Syracuse) 및 나폴리에서 개최된 비공식 레이스에서 우승했다. 그는 해당 경기에서 스털링 모스(Stirling Moss), 짐 클라크(Jim Clark), 그레이엄 힐(Graham Hill)을 비롯한 전설적인 드라이버들과 경쟁했다. 이후 그는 프랑스 랭스(Reims) 서킷에서 열린 자신의 첫번째 F1 월드챔피언십에 출전했다.

그는 페라리 156 ‘샤크노즈(sharknose)’와 함께 12위로 예선전을 통과했고, 세 대의 페라리 차량이 기계적인 문제로 연달아 기권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하지만 바게티는 침착함을 유지하며 레이스를 이어갔다. 그는 마지막 랩에서 댄 거니(Dan Gurney)를 추월하며 단 0.1초 차이로 우승했다. 이로써 바게티는 페라리 팀 데뷔전에서 우승한 드라이버가 됐다. 특히 그는 출전했던 첫 세 번의 경기에서 모두 승리했던 유일한 드라이버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그는 이후 F1에서 단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는데, 이는 그가 써 내려갔던 엄청난 기록만큼이나 믿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마리오 안드레티(Mario Andretti)는 장기간 활약한 드라이버로써, 필 힐(Phil Hill)과 함께 F1 월드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단 두 명의 미국인 선수 중 한 명이다. 마리오 안드레티는 1978년 로터스 팀 소속으로 F1 월드챔피언에 올랐다. 또한 1968년 왓킨스 글렌에서 개최된 미국 그랑프리 데뷔전에서 폴 포지션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당시 그는 주로 인디카(IndyCars)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이후 페라리 팀으로 이적해 스포츠카 레이싱에서 활약하는 이탈리아계 미국인 선수가 됐다. 이후 1970년에 페라리 512 S를 타고 세브링 12시간 레이스에서 승리했다. 1971년 스쿠데리아 페라리 팀에 정식으로 합류한 뒤 그해 시즌 개막전이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 카일라미 레이스에서 곧바로 승리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컨트롤 되고 있다면 당신은 충분히 빠르게 주행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라는 마리오 안드레티의 명언은 그의 레이싱 철학을 잘 보여준다.




알론소는 2010년 바레인 그랑프리에서 가장 빠른 랩 타임을 기록하며 팀 동료인 마사를 16초 차로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했다




키미 라이코넨(Kimi Räikkönen)은 2007 시즌 페라리 팀에서 미하엘 슈마허의 후임으로 발탁되는 영예를 안았다. 슈마허는 페라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드라이버로 손꼽히며 최고의 통산 우승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라이코넨은 아이스맨(Iceman)이라는 별명처럼 침착하게 경기를 운영했고 페라리 팀 데뷔전이었던 호주 그랑프리에서 압도적인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대중의 기대감을 충족시켰다. 그는 폴 포지션과 함께 경기 중 가장 빠른 랩타임을 기록하는 완벽한 페이스를 보여주며 호주 그랑프리 우승을 거머쥐었다(참고로 같은 경기에서 루이스 해밀턴이 맥라렌 팀 소속으로 F1 데뷔전을 치렀고 최종 순위 3위를 기록했다). 라이코넨은 같은 해 추가로 5승을 거뒀고 단 1포인트 차이로 해당 시즌 월드챔피언에 등극하며 페라리의 새로운 전설이 되었다. 페르난도 알론소(Fernando Alonso) 또한 페라리 데뷔전에서 승리를 기록한 드라이버 중 한 명이다. 그는 2010년 바레인 그랑프리에서 첫 레이스를 치르며 우승을 차지했다. 그해 알론소는 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아부다비 그랑프리까지 참여하며 챔피언십 타이틀을 향한 경쟁을 이어갔다.

비록 알론소는 아쉬운 성적으로 2010 시즌을 마무리했지만 그는 여전히 페라리 데뷔전에서 우승을 거머쥔 소수의 드라이버 중 한 명으로 남아있다. 이 사실은 그가 페라리 역사에서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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