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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Mar 2023

잘 살아온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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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아온 인생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드라이버 조디 스켓터(Jody Scheckter)가 1979년 F1 타이틀 우승을 회고하며 그에게 큰 상징이 되는 312 T4가 현재까지도 보관되어 있는 차고의 문을 열었다.

글: 벤 배리(Ben Barry) - 영상: 올리 매킨타이어(Ollie McIntyre)

마당 뒤에 있는 차고의 이중 문을 열자, 11대의 역사적인 레이스카 위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온다. 이 곳은 햄프셔에 있는 레이버스토크파크(LaverstokePark) 농장 인근에 위치해 있다. 이 농장은 전 포뮬러 1 챔피언이 20년 전에 만든 유명한 바이오다이내믹 농장이다.

이곳에 있는 차량들은 그의 레이싱 커리어에 있어 중요한 순간들을 함께했다. Merlyn Mk11 A Formula Ford는 1971년 레이스 오브 챔피언스 서포트 레이스에서 몰았던 차량이다. "차를 브랜드 해치로 운반해 와서 세컨드 로우에서 시작해 빠르게 돌았고, 필드를 통과해 2위로 들어왔죠." 72세의 스켓터는 그 날을 떠올렸다.




조디 스케터(Jody Scheckter)는 영국에 있는 그의 집에서 빛나고 있는 44년 전 타이틀 우승 페라리 312 T4를 공개했다. 




근처에 있는 또 다른 Merlyn은 포뮬러 3 Mk21으로, 크리스탈 팰리스에서 있었던 심각한 충돌 이후 다시 제작되었다. Trojan T101은 무시무시한 포뮬러 5000 시리즈에서 스켓터가 이룬 네 번의 승리 중 세 번을 함께 했으며, 1973년 챔피언십을 이끌었다.

이곳의 자부심은 페라리 312T4에서 드러났다. 스켓터가 스위스 수집가로부터 구입한 이 '화살코' 레이서는 1979년 포뮬러 1 드라이버 챔피언십에 큰 역할을 했다. 동료이자 79년 준우승자인 질 빌뇌브(Gilles Villeneuve)와 함께, 그 해 스켓터는 마라넬로에 여섯 번째 F1 컨스트럭터 챔피언십을 안겨주었다.

"플랫-12 엔진, 접지 효과, 미쉐린 타이어. 운전해 본 차 중 최고였어요." 그가 312T4의 리어 스포일러 위를 손으로 훑으며 말했다. "누군가 원래의 시트를 가져갔지만, 그것만 빼면 이 차는 처음 모습 그대로예요."




스켓터(Scheckter)와 동료인 페라리 드라이버 질 빌뇌브(Gilles Villeneuve)는 1979년 F1 시즌 동안 서로 앞다투었다. 




스켓터는 F1 명예의 전당에 기록되어 있지만, 1979년 엔초 페라리가 이 젊고 잘 나가는 남자를 고용한 것은 거의 도박과도 같았다. 스켓터는1972년 왓킨스 글렌에서 F1에 데뷔한 후 다소 변덕스럽게 속도를 내는 레이서로 이름이 나 있었다.

스켓터는 1974년과 1976년 F1 시즌에 전체 3위를 차지하면서 성숙해졌다. 특히 1976년 스웨덴 그랑프리에서 티렐 P34 식스-휠러(물론 컬렉션에 있는)라는, 뒤떨어지는 차량으로도 성능을 최대로 뽑아내 우승을 거두며 존경을 받았다. 이것이 이 차량의 처음이자 마지막 승리였다. "다른 레이서들이 차를 세팅하는 데 중점을 둘 때, 저는 이 차가 가진 문제점들을 피해서 운전했어요." 이것이 바로 남아공 남자의 돌파법이다.

그 후 페라리에서 전화가 왔다.

"엔초 페라리는 똑똑하고 매우 터프했으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존재였죠." 그가 말했다. "어두운 공간에 밝은 가구가 있는 사무실에서 엔초가 '얼마를 원하나?' 라고 질문했던 게 기억납니다. 돈을 생각하기에는 너무 어리다고 대답했죠. 엔초는 제가 도전하려는 동기가 무엇인지를 테스트하려는 것 같았어요. 제가 들어왔을 때 카를로스 로이테만(Carlos Reutemann)은 사임했습니다."




1979년 F1 챔피언십 우승은 초기에 변덕스럽기로 다소 성급하고 위험한 선수로 묘사된 스켓터(Scheckter)에게 일종의 구원이었다. 




사실, 카를로스는 막강한 챔피언이자 79년 우승 후보인 로터스(Lotus)와 계약을 맺었다. 반면 페라리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서 열린 첫 두 라운드에 전년도 312T3를 내보내며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T4가 키알라미 서킷에서 데뷔한 후 더 좋은 결과가 나왔다. 초창기에는 빌뇌브가 페라리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반면 스켓터는 벨기에와 모나코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라피테(Laffite)보다 8포인트, 빌뇌브보다 10포인트를 앞서며 몬자에 도착했다.

라피테는 엔진 결함으로 중도 탈락했다. 28세의 남아공 레이서 스켓터는 캐나다인 동료 빌뇌브를 이끌며 1-2위로 두 개의 레이스에서 챔피언십을 차지하고 열광적인 홈 관중 앞에 당당히 섰다. 그 우승으로부터 40년 후, 스켓터는 2019 몬자 GP에서 312 T4로 데모 랩을 달리며 가장 먼저 돌아왔다. "79년보다 이번이 훨씬 더 즐거웠어요!"




스켓터(Scheckter)는 몇 년 전 마라넬로를 방문했을 당시 최신 스쿠데리아 차량을 살펴보기를 좋아했다. 




스켓터가 타이틀 방어에 실패하고 성공이 정체되며 레이싱을 그만둔 1980년보다 훨씬 즐거웠던 것은 분명해 보였다.

"매년 한두 명의 드라이버가 사망했죠. 저는 챔피언십에서 우승했지만, 마법은 사라지고 말았어요." 스켓터는 덤덤하게 회상했다.

오늘날 레이버스토크는 친환경 스파클링 와인, 아이스크림, 버팔로 치즈와 유명인사 오너가 있는 농장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티포시에게 조디 스켓터는 온갖 역경을 딛고 페라리에게 1979년 드라이버 챔피언십의 우승을 안겨준 드라이버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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