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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Sep 2021Magazine, Ra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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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에 걸친 미드-엔진

글 - 벤 풀만

60년 전 페라리의 새로운 지평을 연 스포츠카 246 SP는 페라리 로드카와 레이싱카를 영원히 바꾸어 놓을 혁신적인 미드-엔진 레이아웃을 선보였다.

246 SP는 타르가 플로리오에서의 2회 우승을 포함, 뉘르부르크링 1000km 내구 레이스와 같은 유명한 대회에서 수차례 승리를 거뒀다.

246 SP는 타르가 플로리오에서의 2회 우승을 포함, 뉘르부르크링 1,000km 내구 레이스와 같은 유명한 대회에서 수차례 승리를 거뒀다. 이와 같은 성공은 1950년대 후반과 60년대 초반, 엔초 페라리가 스쿠데리아에 집결시킨 뛰어난 엔지니어, 디자이너 그리고 드라이버들 덕분이다.


이들은 250 테스타 로사로 1958년과 1960 월드 스포츠카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는 , V12 장착한 프론트-엔진 스포츠카로 성공 스토리를 내려갔다. 하지만, 당시 포뮬러 1에서는 팀들이 미드-엔진 구성 (당시에는 리어-엔진으로 불렸는데, 운전자 뒤에 엔진이 위치한 외에는 차이가 없다)으로 옮겨가며 변화가 일고 있었다.




페라리는 포뮬러 1과 스포츠카 모두를 변화시키는 작업에 들어갔는데, 이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도 높은 작업이었다. 미드-엔진 1인승 테스트 차량을 만든 후 2.4 리터 V6를 장착해 1960년 모나코 그랑프리에 처음으로 출전했고, 더 작은 크기의 1.5 리터 V6를 탑재해 포뮬러 2 솔리튜드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또한, 같은 해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는 5위(F2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페라리는 이러한 기술을 토대로 신형 미드-엔진 포뮬러 1 경주차량과 미드-엔진 스포츠카를 제작했다. 스포츠카의 섀시는 규정된 2인승 레이아웃을 적용하기 위해 최소한의 개조를 거친 포뮬러 1 차량과 매우 흡사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차량은 진정한 스포츠카의 프로토타입이었다.  




마라넬로 마당에서 찍은 사진. 초기 246 SP에서는 운전석 뒤의 버블과 가늘고 긴 테일핀을 찾아볼 수 있다.




신형 246 SP와 156 F1 1인승 차량은 1961년 2월 13일 마라넬로에서 데뷔했다. (시즌 후반부에 혁신적인 와이드 앵글 셋업의 120도 V6가 나오기 전까지) 포뮬러 1 차량에는 더 작은 1.5리터의 엔진이, 246 SP에는 이보다 큰 2.4 리터 V6가 탑재되었다.


차의 섀시와 미드-엔진은 공기역학적 알루미늄 보디로 덮여 있었는데, 이는 카를로 치티와 그의 팀의 작품이었다. 공기역학이 꽃을 피는 시기에 항공학 전공 엔지니어였던 치티는 소규모의 풍동을 마라넬로에 설치했다. 결과, 246 SP 트윈 노스트릴의샤크노즈’(F1 차에 반영된 기능) 높이 올라간 테일을 가지게 되었다.




양산 모델에 대한 풍동 테스트 결과를 토대로 1961년 모터스포츠 시즌에 등장한 246 SP 와 156 F1에는 트윈 노스트릴 '샤크노즈'가 적용되었다.




미드-엔진 레이아웃, 강력한 페라리의 엔진, 그리고 공기역학적 차체의 결합은 그 자체로 엄청났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있었다.


1961 3 몬자에서 테스트할 당시, 포뮬러 1 차량보다 코너링이 느렸고 직선 구간에서는 결점을 극복하지 못했다. 항공 엔지니어인 치티는 팀의 뛰어난 테스트 드라이버인 리치 긴더와 함께 테스트를 이어 나갔다.




'디노'로 알려진 65도의 더블 오버헤드 캠 엔진은 수년에 걸쳐 다양한 용도로 개발되었는데, 프론트-엔진 페라리에 적용되어 1956년에 첫 선을 보였다. 246 SP의 배기량은 2,417cc으로, 리어-마운트 변속 및 주행을 위해 V6의 블록을 재설계했다.




그와 긴더는 차량을 가로 방향으로 가로지르는 스포일러를 장착하기로 결정했다. 팀이 차량의 양력(vehicle lift)과 항력(drag)을 모두 감소시키는 최적의 위치를 찾을 때까지 매우 정밀하게 차량의 높이와 위치를 조정했다. 직선 구간에서는 약간의 페이스를 잃었지만, 코너링 시 고속 안정성을 확보하며 이를 만회하였다.


공기역학 아이디어가 아직 새로운 혁신으로 여겨졌던 당시, 페라리는 이러한 솔루션이 재급유 뜨거운 배기관에 연료가 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기자와 라이벌 팀에게 설명했다




몬자에서 테스트 주행을 하는 동안, 246 SP의 후방 차체 부분을 제거했다. 원래의 테일핀 디자인에 비해 코너에서 더 빠른 속도를 보였으며, 이는 혁신적인 리어 스포일러의 개발로 이어졌다.




1961년 월드 스포츠카 챔피언십의 첫번째 시합에 출전하기 위해 그 달 말 미국의 세브링으로 건너간 긴더와 그의 동료 울프강 본 트립은 테스트 주행 첫날 새로운 랩 레코드를 기록했지만, 스티어링 휠 오류로 인해 선두에서 중도 포기해야만 했다.


2대의 246 SP 가 출발부터 좋은 조짐을 보이며 타르가 플로리오에 등장했는데, 이곳에서 본 트립과 올리비에 젠더비엔은 미드-엔진 페라리로 첫번째 메이저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1962 시즌에서 246 SP 다수의 챔피언십과 클래스에서 경쟁하기 위해 다양한 모델을 선보였는데, 여기에는 2.0 리터 카테고리에서 우승을 차지한 196, 그리고 V8 엔진을 탑재한 2개의 변형 모델이 포함돼 있다. 2 마라넬로에서 선을 보인 이들은 당시 출시된 250 GTO 데뷔를 다소 무색하게 만들었다… 




리카르도 로드리게스와 F1 챔피언인 필 힐이 1962년 데이토나 3시 레이스에서 2등을 차지했다. 이 경주는 1966년이 되어서야 24시 내구 레이스가 됐다.




246 SP는 같은 해 타르가 플로리오에서 또 한 번의 우승을 차지했고, 뉘르부르크링 1000km 내구 레이스를 석권했으며, 196 SP로 1962년 유러피언 힐 클라임 챔피언십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 기세를 몰아 페라리는 1963년 3월 4일, 첫 12 기통 미드-엔진 차량을 출시했다. 250 P는 246 SP 시대의 막이 내렸음을 의미했다. 그러나 이 새로운 경주 차량은 이전 모델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250P는 세브링, 르망 그리고 뉘르부르크링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1963년 월드 스포츠 카 챔피언십에서는 프로토타입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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